'우리는 왜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사는가?'
박승억의 『가치 전쟁』은 민주 사회가 자주 봉착하는 이런 역설적 상황을 우리 현실에 대입해 이해하고자 하는 책이다. 그간 기술철학이나 학문이론 등의 주제에 천착해온 숙명여대 박승억 교수가 이번에는 ‘다양성 사회에서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오래됐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를 살펴본다. 홉스와 로크에서부터 롤스와 샌델에 이르기까지 앞선 사회사상가들의 논의를 통해 우리의 사회적 삶을 설득력 있게 분석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한다. - 교보문고
목차(Contents)
사회나 조직에서 다양성이 중요한 까닭
사람들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다르고, 행복을 향유하는 방법이 다름. 사회에서는 성별, 직업, 세대 등의 차이에 따른 다양성이 나타날 수 밖에 없음. 옥수수밭의 확장이 옥수수를 좋아하는 벌레에게는 천국이나, 다양한 작물을 재배할 때 얻어지는 자연방제 기능을 해칠 수 밖에 없는 것처럼 오직 한 종류의 삶의 방식만이 허용되는 사회는 변화에 취약함. 생각이나 외모 등이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거나 핍박을 받게되면 사람들의 생각은 획일화 될 수 밖에 없음. 경직되고 획일화된 사회, 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획일화된 시스템은 사소한 외부충격에도 파국을 맞이할 수 있음. 사회 발전을 위한 새롭고 창의적인 생각이 나오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개인에 대한 집단의 폭력이 일상화될 위험이 큼.
다양한 삶이 어우러진 건강한 사회를 이루려면 ‘차이의 존중’이 필요함. 하지만 누군가가 말하는 ‘차이’는 다른 누군가에게는 ‘차별’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므로 차이와 차별이 구별되어야 함. 사회 문화적 소수자들이 어떤 이유로든 차별받지 않고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다양성과 차이는 존중되어야 할 가치임. 또한 본인이 더 많은 노력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게되어 더 많은 사회적 보상을 받기위한 조건으로서의 차이도 존중되어야 함.
'가치 전쟁'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배경
다양성 사회는 말 그대로 서로 다른 삶의 양식들이 공존하는 사회임. 경제적인 불평등이나 문화적 차이가 차별로 이어지는 불평등 역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함. 인간의 존엄은 침해받을 수 없음. 돈과 직업의 문제에만 국한될 것이 아니라, 왕따나 혐오처럼 문화적 다수가 소수에게 행하는 갑질 역시 문제가 되며 그런 의미에서 평등의 이념은 사회 전반으로 확장되어야 함.
자연과학자들의 이론에 따르면 우주에 존재하는 에너지의 총량은 변하지 않으며 대칭성을 기본원리고 삼고 있음. 유사한 관점에서 하나의 시스템이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는 다음 단계로 진화하기 위해 기존의 질서가 붕괴되는 혼란을 겪어야함. 그 혼란이 말하자면 다음 단계로 진화하기 위한 일종의 기회비용이며, 불공정한 사회 혹은 불평등한 사회가 좀 더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가 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임.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적 가치와 평등에 대한 감수성은 높아졌지만 현실의 사회제도들과 사람들의 인식, 그리고 무엇보다 변화하고 있는 현실을 대하는 태도가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못함. 이러한 괴리는 서로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는데 위협요인이 되며 다음 단계로 발전하기 위해 혼란이 동반된 위기를 비용으로 치러야 함.
다양성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사적영역을 존중하기 위해 그의 신념도 존중해야 함. 개성은 존중되어야 하고 취향이 독특하다는 이유로 비난받지 않아야 함. 그래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에서 관용은 불가결한 자질임.
도덕적연대와 이익적연대
세대 갈등의 양상이 변화하고 있는 것 처럼 연대의 양상이 변화하고 있음. 연대가 정치적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 자체가 연대의 의미를 유동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임. 문제는 공유하고 있는 가치의 성격과 그에 따른 연대의 성격임. 도덕적으로 올바른 가치를 공요하는 사람들의 도덕적 연대와 집단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의 이익적 연대는 성격이 다름. 도덕적 연대와 달리 이익에 따른 연대는 이해관계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임.
도덕적 연대는 점점 찾기 어려워지는 반면, 이익을 위한 연대는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아지고 있음. 연대는 여러 관점이 서로 뒤섞여 항상 유동적일 수 밖에 없으며 이는 연대의 일관성이 언제든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함. 도덕적 연대는 부당한 권력에 대해서는 함께 손을 잡을 수 있지만 난민의 처우 문제에 대해서는 입장이 다른것 처럼 다양한 가치관 수용의 어려움이 있음. 이익적 연대는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고 있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고 이런 이해관계에 따라 연대의 방식과 양상이 달라질 수 있음.
민주주의가 모든 시민의 자유롭고 평등한 삶을 목표로 하는 한, 나아가 정치가 시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어야 하는 한 연대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정치적 수단임. 하지만 다수의 표를 무기로 정치적 이익만을 노리는 도구로 전락할 수도 있음. 연대가 정치적 위력을 발휘하는 순간 그것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힘이면서 동시에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음.
자유의 역설
하나의 공동체 혹은 사회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개인이 있어야만 함. 지배와 피지배라는 권력 관계는 공동체 및 사회라는 조건 아래서 생겨나는 것이므로 개별 개인은 권력 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존재임.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부분을 보야야 한다는 기계론적인 생각은 공동체보다 개인이 먼저라는 생각에 도달함. 개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들을 지키기 위해 자연권을 포기하고 정치적 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한 협의 즉 ‘계약’에 나섬. 하지만 개인들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일정부분 자신의 권리에 제약을 허용해야하는 역설적인일이 발생함.
이런 자유의 역설을 해결하기 위해 자유를 ‘자율-스스로 통제하는 자유‘로 해석함. 여기서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인해 다른 사람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판단하고 그 판단에 따라 행동하고 책임져야 하는 딜레마가 발생함.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지만 동시에 공동체적 삶을 위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제약을 무시할 수 없음. 누구든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어떤 공동체에 속하기로 결심했다면 그는 해당 공동체에서 그에게 부여한 역할을 승인한 것으로 볼 수 있음. 그러므로 교육과 인식의 개선 등을 통해 개인들이 자유와 책임 사이의 균형을 이해하고 스스로 통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함.
얌체(무임승차자)와 선량한 시민
얌체(무임승차자)는 자기 이익을 위해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암묵적으로 합의한 질서를 훼손하는 사람을 가리킴. 전통적으로 얌체들은 처벌의 대상은 아니지만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었음. 공동체가 함께하는 일에는 성실하게 임하지 않음에도 정작 노동의 대가나 특정한 권리를 분배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권리를 주장함. 얌체(무임승차자)처럼 노력하든 그렇지 않든 모두가 평등하게 나눈다면 열심히 일할 동기가 줄어들고, 무임승차의 유혹이 생길 수 있음. 이렇게 무임승차자가 늘어나면 당연히 사회 전체의 생산성은 떨어질 가능성이 높음.
선량한 시민은 남에게 해 끼치지 않고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이지만,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일뿐 이타적인 사람이 아닐수도 있음. 이타적으로 행동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타인에게 아픔을 주는 행위를 못견디는 사람이며, 보편적 인권이 짓밟히는 것에 대해 분노할 수 있는 사람들임.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다양성과 공존을 위한 현실적인 조건이 될 수 있음.
역사가 다르고, 사회문화적 조건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사람다운 삶’이라는 형식적 이념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존재해온 공동체적 규범이었음. 오늘날의 사회가 요구하는 시민의 상식은 인권에 대한 존중과 공동체적 삶의 규범에 대한 감각이라고 말할 수 있음. 이상과 현실 사이의 균형은 우리가 사회의 현실적 조건을 고려하고 현재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사람다운 삶’에 좀 더 가까이 가려는 노력에 달려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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